이란에서 교수형을 당해 죽었다고 확인되었던 사형수가 다음 날 시체 보관소에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발생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형 집행 참관 의사가 분명히 죽었다고 확인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한 임사체험자(臨死體驗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강이나 냇물을 건너다가 중간에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만약 강물을 다 건넜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강물을 건너면 저승에 도달하는 것인데, 건너던 도중에 다시 돌아왔으니까 이승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본다.
살아 있는 자의 세계인 이승과 죽은 자의 세계의 저승 사이에는 강물이 흐른다고 여겼다. 동양에서는 이 강물을 삼도천(三途川)이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요단강이다. 기독교 찬송가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는 죽은 뒤에 천국에서 만나자는 의미이다. 이집트의 나일강도 요단강과 같은 의미의 강이다. 나일강을 기준으로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이 구분된다. 피라미드 내부에서는 나무로 만든 고대 이집트의 목선(木船)이 발견되었는데, 이 배는 파라오의 시체를 운반하면서 나일강을 건널 때 사용되었던 운반 수단이기도 하였지만, 망자가 사후세계로 갈 때 타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한 종교적 상징물의 성격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에서 상여(喪輿)를 메고 갈 때 상여꾼들이 냇물의 다리를 건널 때는 바로 건너지 않고 잠시 멈추는 습관이 있었다. 망자의 혼이 물을 건널 때는 힘이 들기 때문에 곧바로 건너는 것보다는 잠시 멈추었다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상주(喪主)가 상여꾼들에게 노잣돈을 지불하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 말에서 '물 건너갔다'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는 뜻을 내포한다. 불교에서도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역시 배를 타고 간다고 본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이 그것이다. 지혜의 용(龍)이 큰 배가 되어 망자들을 안전하게 태우고 피안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생각하였다. 인생에서도 물을 한 번 건너야 한 차원 바뀌는 것 같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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