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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護衛武士(호위무사)

동영 도안 2013. 9. 23. 16:47

'호위 무사' 하면 '운검(雲劍)'이 떠오른다. 2품의 벼슬로서 왕을 최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무사이다. 행사장에서는 왕의 등 뒤에 칼을 차고 호위하는 자리이다. 왕의 신임이 두텁고 검술의 고단자가 이 자리를 맡았다. 운검이 차고 다니는 칼자루와 칼집에는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운검이라 하였다. 구름이 있어야 용이 승천하고, 용은 왕을 상징한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미상~1456)이 운검이었다.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거사는 원래 성승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성삼문·박팽년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거사에 참여하도록 설득한 주도적 인물이 바로 성승이다.

젊었을 때 성승과 함께 무과에 급제한 절친한 동창이 있었는데 조숭문(趙崇文·미상~1456)이라는 무반이었다.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기도 했고 필자의 18대조이다. 성승의 여동생이 조숭문의 부인이 되었으니까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조숭문도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성승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성승의 아들 성삼문도 가담하였듯이 조숭문의 아들 조철산(趙哲山·미상~1456)도 아버지와 같이 가담하여 부자지간에 사형을 당한 것이다.

조숭문은 북방의 6진을 개척할 때에 대장인 김종서의 부관이자 호위 무사였다. 계유정난 때 단종의 후견인이자 호위 무사 격이었던 김종서가 세조로부터 기습을 당해 죽은 뒤로 절치부심하고 있다가 성승과 함께 행동한 것이다. 김종서의 오른팔이자 호위 무사 격이었던 이징옥(李澄玉·미상~1453)은 모시던 대장인 김종서가 죽자 도절제사로 있던 함경도에서 변란을 일으켰다. 역시 세 아들과 함께 피살되었다. 김종서의 호위 무사 출신이었던 두 사람. 이징옥은 칼을 들고 저항하다가 함경도에서 관군의 덫에 걸려 죽었고, 조숭문은 서울에서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죽었다. 얼마 전에 통도사 옥련암(玉蓮庵)에 가니까 이상하게 샘물 맛이 사람을 잡아당긴다. 이징옥 장군이 먹던 장군수(將軍水)라고 한다. 이징옥은 통도사와 가까운 하북면 삼수리(三守里)가 고향이었다. 이 물을 먹고 이징옥이 호위 무사가 되고 힘센 장군이 되었던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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