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벼슬 가운데 '청요직(淸要職)'은 사간원(司諫院)·사헌부(司憲府)·홍문관(弘文館)이었다. 사간원과 사헌부는 비리를 적발하고 탄핵할 수 있는 자리였다. 높은 벼슬도 아니고 돈이 많이 생기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권력의 선봉에 서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당쟁(黨爭)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요직이었다. 동시에 사간원과 사헌부는 맞수였다. 사간원은 사헌부를 탄핵할 수 있었고, 사헌부도 사간원을 고발할 수 있었다. 칼자루를 쥔 양쪽이 서로 정면 충돌할 경우에는 중간에서 홍문관이 중재했다.
홍문관의 수장은 대제학(大提學)이다. '삼정승(三政丞)이 불여(不如) 일대제학(一大提學)'이라는 말도 있듯이, 조선 시대 대제학은 정승보다 더 존경받을 수 있는 학자가 맡는 자리였다. 대제학 많이 배출한 집안을 A급 양반으로 대접하였다.
현대에 들어와 국세청장·국정원장·검찰총장은 3대 권력기관 수장이다. 국세청의 장부(帳簿), 국정원의 감청(監聽), 검찰의 기소(起訴)는 한국 사회의 3대 칼날이 아닌가. 칼을 쥔 직업은 손에 피를 묻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주직(朱職)이다. 칼에 맞은 사람도 피를 흘리고,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결국에는 피를 흘린다. 이름하여 '혈삼직(血三職)'이다.
근래에 국세청장 여러 명이 뇌물 혐의로 해외에 도망 다니거나 검찰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가는 것을 국민은 다 보았다. 국정원장은 어떤가. 김형욱은 파리에서 행방불명 되었고, 김재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권영해는 할복 시도를 했고, 임동원도 감옥에 갔다 왔고, 원세훈은 문제의 한복판에 있다. 검찰총장도 근래에 임기를 제대로 채운 사람이 몇 명 안 된다. 지관(地官)들 말대로 서초동 대검청사 자리가 공동묘지 터라서 그런 것인가? 검찰총장 집무실은 청사 8층에 있는데, 한 번씩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방이라고 들었다. 피를 흘릴망정 '혈삼직'은 모두가 선망하는 벼슬이요, 쥐어보고 싶은 칼자루다. 그러나 당쟁으로 시달린 양반 집안에서는 '정3품 이상 벼슬은 하지 않는다'가 가훈이었다. '요직에는 가지 않는다'이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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