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혼 사업은 승진은 시험은 집 매매는건강 자식은? 자세히보기

명리학

뱀띠 이야기

동영 도안 2012. 12. 31. 15:28

원래 뱀은 용과 함께 인간의 신앙적 숭배 동물이었다.
12수호신으로 보면 여섯번째로서 용(辰) 다음이 뱀(巳)이다.
'사(巳)'에는'식물이 싹이 터서 한참 자란 시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달로는 식물이 한창 자라는 때인 음력 4월을 가리키고 시간은 오전 9시에서 11시사이를 말한다.

뱀은 영특한 동물이고 사람에게 먼저 해를 끼치지 않는다. 뱀은 용과 함께 영험한 힘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어 죽이거나 잡아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조선조까지도 뱀을 먹는 풍습은 없었다. 뱀의 쓸개가 눈을 밝게 한다는 말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있기는 하나, 정력에 좋다는 속설은 뱀장수들이 만들어낸 허설이라고 한다.
뱀의 독은 맹독으로 한 마리가 가진 독으로 수십 명을 죽일 수 있다. 특히 뱀탕을 끓였을 때 뜨는 뱀기름은 남성의 성기능을 해친다고 한다. 뱀을 생식한다든가 구워서 먹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몸에 좋지 않다. 독성이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몸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뱀을 먹어 정력이 솟아나 회춘했다는 사람이 있으나 사실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몸이 늙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몸 속에 독을 넣어 흔들어대는 것과 같다. 간혹 죽음 직전의 폐병 환자가 뱀을 고아먹는 경우는 있었다. 그것은 이왕 죽을 사람이므로 마지막 죽기살기식의 독용법(毒用法)인 셈이다. 의학적으로 동종요법이라는 것이다. 이는 독을 조금씩 써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때 쓰는 독은 아주 적은 양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하듯 한의학에서는 이를 '독으로써 독을 다스린다.'는 비술(秘術)로 쓰고 있다. 이 때의 약용은 살모사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뱀을 '업구렁이'라 해서 신성시하였다.
구렁이가 집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물을 내려준다 해서 길조로 여겼다. 물론 죽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업구렁이가 집에서 나갈까 보아 걱정을 하면서 잘 모셨다. 따라서 '구렁이'라 부르지도 않고 '지킴' 또는 '지킴님'이라고 높여 불렀다. '구렁이'라 부르는 것은 금기(禁忌)였던 것이다. 이건(李建)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 보면, "풀이 무성하고 습기가 많을 때는 뱀이 규방이나 처마, 마루 밑, 자리 아래 어디서나 기어들어와 잠잘 때 피하기가 어렵다. 섬 사람들은 뱀을 보면 '부군신령(府君神靈)'이라 하여 쌀과 맑은 물과 술을 뿌리면서 빌고, 죽이지를 않았으며, 만일 뱀을 죽이면 재앙이 내려 발굼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는다고 알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뱀은 중국에서도 신으로 모셨다.
복희씨와 여와씨(女窩氏)는 뱀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이 달린 형상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물의 신(河神)의 모습도 뱀이라고 믿었다.
일본인들도 뱀 자체를 시조신으로 여긴다. 일본을 건국한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동생 소전명존(素箋鳴尊)은 머리가 여덟 달린 뱀의 몸에서 칼을 꺼내 나라를 지키는 보검으로 삼았다. 이것이 일본 3대 국보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는 천총운검(天叢雲劒)이다.
희랍신화의 최초 인간은 케크로스라는 뱀이고 헤브라이신화의 첫여자 에와도 뱀이었다. 에와와 뱀은 같이 어울릴 수 있었고 성행위를 하는 관계였다. 이는 창세기에 기록된 뱀과 이브의 어울림에서 알 수 있다. 즉 태초의 뱀은 서서 다녔고 잘 생겼고 지혜로왔으며 이브와 함께 놀 수 있는 상대였다. 그것은 반대로 말해 이브와 뱀이 한 종족이었다는 반증이 된다.

고구려의 천왕지신총 벽화에는 인두사신상(人頭蛇神像)이 있고 삼실총 벽화 중 교사도(交蛇圖) 가운데도 뱀이 지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라의 미추왕릉이나 노동동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에도 뱀은 역시 신성한 존재로 새겨져 있다.

뱀이 나쁜 의미로 인식된 것은 나쁜 역할을 도맡아 한 희랍 신화 속의 메두사가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뱀은 우리 나라 설화 속에서도 주로 인간을 해치려는 사악한 존재로 묘사됐었다. 강원도 치악산에 있는 상원사(上阮寺)의 연기설화(緣起說話)가 그러한 예의 하나일 것이다.

가난하지만 선한 나무꾼이 살았다. 그는 나무를 해먹고 사는 처지라 늘 산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산이 그의 친구였고 산짐승 또한 그의 친구였다. 그는 약육강식이 횡횡하는 산에서 늘 약하고 불쌍한 짐승들의 편이 되었다.
어느날 그는 꿩 부부가 뱀의 공격에 처한 상황을 보게 되었다. 뱀은 꿩의 새끼를 잡아 먹으려 했던 것이다. 그는 어린 껴병이를 지키려는 꿩의 모성애에 감탄하여 작대기로 뱀을 때렸다. 단 한번뿐이었는데 뱀은 급소를 맞아 죽어 버렸다.
그러던 다음날 나무꾼은 나무를 팔고 돌아오다 고갯길에서 밤을 맞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불빛이 비치는 집을 찾게 되고 하루 저녁 쉬어가기를 청했다. 주인 여자는 살갑게도 따뜻한 저녁과 술로 주린 나무꾼의 배를 채워 주었다.
술에 취한 나무꾼은 여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술기운에도 목이 눌리는 것을 깨달은 나무꾼은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뻗었다. 놀랍게도 몸을 칭칭 감은 뱀이 입을 벌려 그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었다. 이 뱀은 어제 죽은 뱀의 신부뱀으로서 복수하기 위해 여인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무꾼은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꼼짝없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종소리가 들렸다. 땡땡땡땡, 자지러지게 우는 종소리에 뱀이 놀라 숨어버리는 바람에 나무꾼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나무꾼은 자신을 구해준 종을 찾아가 보았다.
그곳에는 전날 나무꾼이 살려준 꿩 부부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를 살려주기 위해 몸으로 보은을 한 것이다. 그 터가 상서롭다 하여 절을 세웠는데 그 절 이름이 바로 상원사이다.


<용재총화>에는 한 승려가 죽어 뱀이 된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진광사(晉光寺)의 승려가 시골 여인을 아내로 삼고 몰래 밤마다 출입하다가 죽었다. 죽은 중은 아내를 못잊어 뱀으로 환생하여 낮에는 독 속에 숨어있다가 밤이면 아내와 동침하였다. 이 사실을 안 마을의 사또가 뱀을 궤짝에 넣어 물에 띄워버렸다는 내용이다. 이밖에도 절에서는 탐욕하거나 게으른 중이 뱀으로 환생하여 절 근처에 살면서 다른 중의 본보기가 된다는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뱀이 사람을 해치려고 했다는 설화는 꽤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선악의 이분법처럼 좋은 뱀에 대해 나쁜 뱀의 대칭으로 쓰여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뱀이 나쁘게 인식된 것은 남근의 상징으로, 또는 남의 여인을 범하는 상사뱀 전설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뱀은 떠돌아 다니는 남성, 즉 한량아로 비유된다. 정숙한 부인들을 유혹하는 애욕 그 자체인 것이다. 죽은 사람의 혼으로 태어나는 상사뱀은 자기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사모했던 여인을 노리게 된다. 가지밭에 숨어 가지로 둔갑하거나 오이밭에선 오이로,고추밭과 무밭에서는 고추와 무로 변신하고 있다가 사모했던 여인이 밭으로 들어오면 재빨리 여인의 음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번 들어간 뱀은 절대로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평생 그 여인의 신랑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연유로 색시를 빼앗긴 남성들에게는 뱀은 철천지 원수가 되고 그러한 상사뱀으로 인해 뱀 자체에 대한 나쁜 인식이 심어지게 된다. 상사뱀 설화는 대체로 불교적인 교훈을 말할 때 '뱀은 애욕의 화신'이라는 관점으로 인용된데서 비롯한다.
<법화경>은 뱀의 길다란 형태와 삼각형 머리를 남근의 형태나 성적 기교로 해석해 애욕의 뿌리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애욕과 성희에 대한 근원적 생각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빨래하러 갔던 여인의 가랑이 사이로 물 속에서 갑자기 솟구친 뱀이 뛰어들었다거나, 동동 떠내려오는 뱀알을 주워먹고 잉태를 했다는 옛날 이야기는 아이의 신비한 출생으로 간혹 미화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뱀은 남성 상징이라는 이야긴데, 외로운 여인에게 뱀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음직하다.

뱀에 얽힌 이야기는 민간에 많이 전한다.
어느 농부가 논두렁을 자꾸만 뚫는 뱀을 삽으로 찍어 죽인 다음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다가 담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아이가 죽은 땅을 파 보았더니 토막난 뱀의 시체가 있었다는 이야기로부터, 뱀을 죽이려면 완전히 죽여야지 반만 죽이면 살아나서 그 집 간장독에 들어가 멱을 감는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뱀서방 설화> 하나를 덧붙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자.
이 설화는 <맹진사댁 경사>, 즉 <시집가는 날>의 근원으로 현대 문학에 변용되어 나타난다.

어느 마을에 아기를 못낳는 부인이 있었다. 남편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씨를 내리지 못하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이 부인은 정안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어도 보고 산 속 깊은 곳을 찾아가 바위 치성도 드려보았으나 잉태의 소망은 별바라기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세월도 흘러 부인의 나이 어느덧 오십, 손자는커녕 자식도 없으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할머니 취급을 받았다. 희망을 잃고 한숨을 쉬며 빨래를 하기 위해 개울로 나간 부인은 위쪽에서 동동 떠내려오는 오이 하나를 발견하곤 팔자타령을 하며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조화이랴. 그날 이후로 이 부인에겐 태기가 있어 열 달 후에 아기를 낳았으니 참으로 반갑고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아기를 본 부인은 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샅 부분까지는 분명히 사람인데, 그것도 아주 잘 생긴 사람인데 두 다리가 뱀이 아닌가. 징그러운 뱀이 고추 아래로 길게 붙어있는 것이다. 부인은 운명으로 여겼다. 이런 자식일망정 아들을 점지해 준 삼신할머니께 감사한 마음까지 가졌다. 정성으로 키웠다. 머리도 좋았고 건강하였으며 부모님께 효성하는 마음 또한 지극하였다.
어느덧 이 뱀아이는 열 여섯 살 총각이 되었다.
뱀총각은 장가를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자신의 하체가 뱀이니 어떤 처녀가 시집을 올 것인가. 이때 이웃집에 딸 셋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혼인 이야기가 나오자 기겁을 하며 차라리 처녀로 늙어 죽었으면 죽었지 뱀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셋째딸은 그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 뱀총각을 동정하는 마음에서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다. 뱀총각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드디어 혼인식을 올리고 첫날밤이 되었다. 뱀과 동침할 시간이 된 것이다. 셋째딸 색시는 불안한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또한 어찌된 일인가. 뱀신랑은 스르르 허물을 벗더니 멀쩡하고 잘 생긴 남자로 바뀌는 게 아닌가. 꿀같은 밤이 지났다. 아침이 되니 신랑은 다시 뱀으로 변했다. 낮에는 뱀이요 밤에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비밀을 아는 색시는 남들의 숙덕숙덕에 아랑곳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신랑은 과거의 업(業)과 인연을 이야기했다. 전생의 업보가 다하여 결혼 100일이 지난 날 뱀신랑은 완연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행복한 부부가 되자 큰언니 둘째언니는 시샘이 발동했다. 이제 완전한 사람으로 돌아온 신랑이 과거길에 나서자 막내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깊은 비밀 하나를 캐냈다. 뱀신랑은 마지막으로 허물을 벗던 날 뱀허물을 아내에게 주면서 앞으로 삼 년 동안 절대로 남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당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니들의 꾐에 빠진 순진한 색시는 이 비밀을 언니들에게 말해버린 것이다. 막내가 밭에 나간 틈을 타서 언니 둘은 이 뱀허물을 찾아내어 불에 태워 버렸다.
어떻게 됐을까? 허물을 잃어버린 신랑은 영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색시는 울며불며 후회했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이할 것인가. 색시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으로 날이면 날마다 하늘에 빌고 땅에게 속죄했지만 한번 떠난 남편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색시는 결심했다. 남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갖가지 고통과 시험을 거친 어느날 색시는 드디어 남편의 소재를 알아냈다. 천길 땅속 깊은 곳 지하국에 남편이 살고 있다고 하여 찾아가니 과연 남편은 그곳에서 세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아들 딸도 여러명 있었다. 물론 변신하는 뱀이었다. 색시는 현재의 세 부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남편을 되돌려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게 어디 될 말인가. 세 부인들은 오히려 색시를 미친년 취급하며 당장 여기를 떠나라고 호통을 쳤다. 그래서 색시는 남편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함께 돌아가자고 빌었다. 그러나 남편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때 지하국 임금이 그간의 사정을 듣고는 우선 야단을 친 다음에 어려운 시험 세가지를 통과하면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허락했다. 색시는 호랑이 수염 뽑기 등 세 가지 어려운 관문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이리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온 뱀서방 내외는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반응형

'명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妻不用妾(처불용첩)  (0) 2013.01.02
財의 위치별 특성  (0) 2013.01.01
財官同臨(재관동림) : 결혼전에 아들  (0) 2012.12.29
천간충여부  (0) 2012.12.26
身弱官殺 혼잡  (0) 201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