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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말기 위암으로 1년 정도 투병하던 거사님이 바싹 마른 몸을 이끌고 언양을 방문했다. 병원이 얼마나 지어졌는지 알고 싶어 왔다고 했다. 5년 전부터 매월 2만원을 후원하던 중 삶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다며 3시간을 달려오셨던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놈의 병원은 왜 이렇게 빨리 지어지지 않는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니 땅이 꺼질 듯 한숨이 나왔다.
“비록 눕지 못할 곳이지만 훗날 나 같은 사람들이 편히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향해 환히 웃음 짓던 거사님. 물 한모금도 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거사님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 저는 이제 더 이상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이 한세상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이제는 좀 편안히 쉬고 싶습니다. 대신 극락세계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극락세계는 있습니까? 절에는 어렸을 때부터 다녔지만 극락세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스님이 있다고 말씀하시면 저는 믿겠습니다.”
“업을 가진 채로 불국토에 태어날 수 있다면 그곳은 서방정토뿐이라고 믿습니다. 저 또한 죽으면 서방정토에 왕생할 것이고요.”
순간, 거사님 얼굴에 안도감이 흘렀다.
“스님, 저도 서방정토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극락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나라에 가서 태어나기를 서원하며 일념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칭념하는 것입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거사님은 이미 아미타불을 염하고 있었다.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기를 간곡하게 발원했던 것이다. 소박하고 섬세한 그 모습에서 참으로 고왔을 거사님 삶을 상상해봤다.
거사님은 늙으신 어머니와 세상물정 모르는 아내, 어린 두 아들을 두고 가겠지만 그 또한 인연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정말 살고 싶어서 무엇이든 다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죽는 일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을 할 때는 얼굴에 허무함이 감돌았다.
“스님, 사람들은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 돈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디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연 앞에서 허락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죽을 인연 앞에서 몸부림 쳐봤자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다 내려놓았고요.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으렵니다.”
거사님은 임종 1주 전에도 언양을 찾았다. 한 달 째 물 한 모금 삼킬 수없는 상황이었지만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4시간 동안 타고 왔다. 통증이 조절되지 않아 죽는 것이 더 낫겠다며 힘들어했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는 말을 하는 모습에서는 생사를 초월한 여유가 보였다.
“고생하는 스님 얼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거사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런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환자의 눈물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흘러내림을 느낀다. 파리한 거사님 얼굴을 만져드리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모습을 기억 속에 담았다. 거사님 얼굴 뒤로 뭉게구름이 간월산을 가르며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헤어지면 백천만겁 지나도 다시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영원의 시간에 오직 한번뿐일 소중한 인연 앞에서 우리는 서로 바람처럼 사라짐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거사님이 죽어갈 때, 죽음의 순간에, 49재 기간에 극락정토 왕생을 일념으로 염불해드릴 것을 약속했다. 앙상한 콘크리트 뼈대만 보이는 병원 건물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거사님은 병상하나를 기부한 후 몸을 차에 실었다. 차창을 열고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이곳 자제병원에 머무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시게 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거사님은 아내가 잠시 시장에 간 사이, 당신이 좋아했던 염불을 커다랗게 틀어놓고 단정히 누워 이 세상을 떠났다. 언양 건축현장을 다녀가고 7일 뒤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일심으로 염불했고 떠나면서도 염불을 하다가 떠나신 것 같았다.
아미타부처님. 정토왕생을 믿고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서원했으며 일념으로 부처님 명호를 칭념하온 정토행자 거사님을 사십팔원 대원력으로 섭수하여 주옵소서.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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